은하은행 약관 제9조 3항으로 금고를 털겠습니다
폐업 마지막 날, 서도윤(27)은 퇴직금 대신 받은 후순위채가 '항로 폐쇄 면책'으로 상환 거절됐다는 통지서를 받습니다.
이의신청 처리 기간은 최장 1,400일.
경리팀장 오지연에게는 이번 달 안에 필요한 아이 수술비가 있습니다.
기다릴 시간이 없는 두 사람이 텅 빈 회사 자료실을 뒤지던 중, 쌓인 서류 더미 위에서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집니다.
거기에는 은하은행 금고실 현물확인권, 제9조 3항 단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조항이 아직 살아 있는지는 개정 이력을 끝까지 읽은 도윤만 알아봅니다.
총도, 해킹도, 천재적인 머리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조항 번호를 또박또박 읽는 목소리 하나입니다.
그 목소리가 규정 DB와 직결된 경비 로봇 앞에서 떨리지 않으면 금고는 열립니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먼치킨보다 어설픈 사람들이 어찌저찌 해내는 팀 케이퍼가 좋은 분
- 계획이 틀어진 현장에서 조항 하나로 판을 뒤집는 쾌감을 좋아하는 분
- 규칙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이기는 이야기에 속이 시원해지는 분
- 밝고 쾌활한 미래 직장인 SF를 찾는 분
◆ 매력 포인트
1. 하이스트의 도구가 약관 조항입니다. 금고는 낭독과 절차 준수로 열립니다.
2. 같은 수는 두 번 못 씁니다. 은행이 24시간 안에 개정 공고로 막기 때문에 매번 더 깊고 더 엉뚱한 조항을 찾아야 합니다.
3. 팀원은 면허취소 항법사, 연기 못하는 영업사원, 전직 금고 기술자 청소 용역 할머니 같은 쓸모 애매한 퇴직자들입니다. 각자의 어설픈 특기가 맞물릴 때만 작전이 성립합니다.
4. 은행은 무서운 악당이 아니라 규정에 갇힌 코믹한 상대입니다. 그런데 한빛채권의 파산에는 설계의 냄새가 납니다.
"저기, 제9조 3항 단서를 읽어 드려도 될까요? 떨려도 번호는 안 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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